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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뉴스

일 자
2026-03-09 09:14:47.0
제목 : ‘마늘’인데 ‘파’ 같네…겨울철 든든한 소득작물 ‘이것’ [디지털농업 I 명산지를 찾아서]

이 기사는 성공 농업을 일구는 농업경영 전문지 월간 ‘디지털농업’ 3월호 기사입니다.

‘처음 나온’ 혹은 ‘덜 여문’을 뜻하는 접두사 ‘풋’이 붙어 있지만 분명 마늘이라 했는데, 밭에서 방금 캐낸 것을 보면 어째 마늘보다는 파를 닮았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참 희한한 장면이다. 들여다볼수록 궁금해지는 이름, 바로 ‘풋마늘’이다. 뿌리째 뽑은 풋마늘의 흙을 털어내듯, 이 묘한 작물을 둘러싼 궁금증을 말끔히 털어내고자 경남 사천에 다녀왔다.

 

잎·줄기·뿌리까지 버릴 것 없이 한 포기 전체를 식용으로 삼는 경남 사천 풋마늘.

여느 농촌 지역이 농한기를 보내는 겨울에도 경남 사천시 남양동 송천마을은 분주하다. 이날 아침에도 톤 단위 트럭들이 풋마늘을 가득 실은 채 차례차례 마을 어귀를 돌아나갔다. 이번 겨울에는 지난해 12월 10일 무렵 수확을 시작해 올해 2월까지는 시설재배한 풋마늘이 출하했고, 3~4월에는 노지에서 키운 풋마늘이 시장으로 나간다.

마늘이야 단군 신화에도 등장할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작물이지만, 풋마늘은 결이 다르다. 사천 풋마늘은 난지형 마늘로, 19세기 중후반에 기후가 온화한 사천 해안 지역에 도입된 이후 수 세대에 걸쳐 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하며 토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가 흔히 마늘이라 부르는 것은 ‘인편’을 키워 먹는 작물인데, 재배 형태에 따라 한지형과 난지형으로 나뉜다. 반면 풋마늘은 인편이 형성되기 전에 잎·줄기·뿌리를 식용으로 삼는다. 생으로 무쳐 먹을 수 있을 만큼 조직이 부드럽고 매운맛도 강하지 않다.

지금이야 사시사철 신선한 채소를 먹지만 한때 겨울 밥상은 묵나물과 저장 채소에 의존해야 했다. 그런 시절,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남녘의 밭이 가장 먼저 내놓은 풋마늘은 밥상에 힘을 실어주는 고마운 채소였다.

 

경남 해안 지역 토산품에서 고소득 특산물로

사천이 삼천포로 불리던 시절, 이 고장에서 계절을 나는 먹거리로 유용했던 풋마늘은 마을 아낙네들이 지금은 폐선된 진삼선 열차나 완행버스를 타고 진주시장에 나가 팔면서 입소문이 났다. 그 맛이 알려지면서 겨울이 오면 사천 풋마늘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늘었다. 송천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동곤 사천풋마늘영농조합법인 대표(74)의 기억 속에도 그 모습이 또렷하다.

김동곤 경남 사천 풋마늘영농조합법인 대표.

“동네 아주머니들이 역까지 풋마늘을 머리에 이고 지고 갔던 기억이 있어요. 그러다가 몇 년 지나 리어카를 들여왔는데, 그래도 비포장도로를 오가는 게 쉽지만은 않았죠.”

사천 풋마늘이 본격적으로 지역 특산물의 위상을 갖고, 소득작물로 자리 잡은 것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다. 2006년 사천 풋마늘을 지역 소득작물로 정착시키고자 사천시농업기술센터와 재배 농가가 사천시풋마늘연구회를 결성한 것이 분기점이 됐다.

2009년에는 삼천포농협이 행정과 유통의 기틀을 마련하고, 재배 농가들이 주체가 돼 사천풋마늘영농조합법인을 출범시켰다. 개별 농가 단위로 흩어져 있던 생산과 유통 체계를 법인 중심으로 묶고, 여기에 농협의 유통망을 결합한 ‘산지 조직화’가 이뤄지면서 사천 풋마늘은 경쟁력을 갖춘 소득작물로 자리매김했다.

 

주아 선발로 무병 종구 확보, 우수한 혈통 유지

풋마늘은 더위는 물론 추위에도 강한 편이 아니어서 연적합하다. 사천에서도 풋마늘 재배가 남양동, 그중에서도 해안과 맞닿은 자연부락인 송천마을에 집중된 것은 이러한 기후 조건에 더해 배수가 좋은 토양과 일조 확보가 쉬운 완만한 평지라는 지형 조건이 맞물린 결과다.

한겨울에는 풋마늘이 누운 듯 자라다가, 날이 풀리면 곧게 서서 자란다.

수확 작업이 한창인 하우스에 들어서자 알싸한 향이 은은하게 퍼진다. 막 수확한 풋마늘은 다 자란 통마늘과 달리 마늘쪽이 보이지 않는다. 파를 닮았다고는 하지만, 뿌리가 길고 줄기는 짧다는 점에서 차이가 드러난다. 줄기에는 선명한 자색이 돈다.

“풋마늘은 마늘쪽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인편이 형성되기 전 단계에서 수확해 먹기 때문에 눈에 띄지 않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인편이 생길 때까지 뒀다가 그것을 씨마늘로 쓰지는 않지요. 사천 풋마늘은 주아를 이용해 무병묘를 확보합니다.”

주아는 마늘종(꽃대) 끝에 달리는 작은 구슬 모양의 번식체다. 인편에 비해 바이러스 감염 밀도가 낮아 병에 강한 종구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사천에서는 사천시농기센터와 풋마늘 농가가 협력해 지역 재래종 가운데 우수 개체의 주아를 선발하고 이를 조직배양 기술로 증식한 무병묘를 파종용 풋마늘 재배에 활용해왔다.

오늘날 사천 풋마늘이 다른 지역의 풋마늘과 또렷하게 구분되는 점 가운데 하나는 이 종구 관리 방식에 있다. 이는 각 농가가 자체적으로 종구를 생산·사용하는 방식보다 품질 관리 측면에서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철저한 종구 관리로 기술적 완성도를 높였음에도 최근에는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가 나타났다. 근래 농사일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나 기후다. 가령 지난해에는 파종기에 이상고온이 이어진 데다, 파종 후 한 달간 구름이 잦아 일조량이 턱없이 부족했던 탓에 발아에 차질이 빚어졌다. 김 대표는 이를 두고 “마늘도 사람처럼 마늘이 잠을 설치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흙의 기운을 받고 깨어나야 할 마늘들이 ‘잠을 설친’ 데 이어 햇빛까지 보지 못하며 일부 발아 불균일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생장 속도가 들쭉날쭉해지면 수확 작업의 효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전체적인 품질 관리에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다행히 농가들이 잘 관리해 올해도 평년작은 하고 있지만, 기후변화의 불확실성을 실감하고 있다”고 김대표는 말한다.

 

노동집약적 작물, 고령화 속 유지 대안이 과제

사천시농기센터에 따르면 현재 사천 풋마늘은 73농가가 13만 2000㎡(4만 평) 남짓한 면적에서 연간 150t을 생산하고 있다. 통마늘에 비해 재배 기간이 짧고 출하 시점이 빨라 농가소득 기여도가 높은 작물로 평가된다. 농가들은 풋마늘 수입을 두고 “돈이 가장 귀한 겨울철에 버팀목이 되는 작물”이라고 말한다.

사천 풋마늘은 줄기가 10㎝ 안팎으로 짧고 붉은 기가 도는 것이 특징이다.

풋마늘 역시 이어짓기(연작)에 따른 토양 피로에서 자유로운 작물은 아니다. 다만 수확 시기가 빠른 데다가 이후 완두콩이나 고구마를 뒷그루(후작) 작물로 재배한 다음 토양 소독과 관리 작업을 병행하면서 연작장해를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 낮춰왔다. 그럼에도 농가들 사이에서는 이 풋마늘을 오래 맛볼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가 조심스레 나온다.

“상당 부분 기계화가 이뤄진 통마늘과 달리 풋마늘은 씨마늘로 쓸 종구를 쪼개는 것부터 파종과 수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사람 손에 의존합니다.”

고령화가 심화하는 농촌의 현실에서 노동집약적 특성은 풋마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가장 큰 변수다. 기계화의 한계를 극복하고 노동력 부족을 메워줄 대안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럼에도 사천 풋마늘은 쉽게 사라질 작물로 보이지 않는다. 

“생으로 먹어도 아주 맛이 그만이지요. 겨울을 아주 튼튼하게 날 수 있을 겁니다.” 

풋마늘 한 단을 건네는 농민에게는 자부심이 가득하다. 기후변화와 제한적인 노동 구조 속에서도 지금까지 사천 풋마늘의 명맥을 이어온 사람들은 이 작물을 쉽게 놓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알싸하고 달큼한 풋마늘을 오래도록 맛보게 할 그들의 분투에 조심스레 기대를 걸게 된다.

 서진영 | 사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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